나지막한 목소리 너머로 수려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화면에 펼쳐졌다.
지금으로부터 482년 전 '작은 금강' 칠보산과 마주한 선비의 감탄이다. 비바람이 불고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아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게끔 하는 절경이었다.
광고옛사람들이 꼭 한번 가고 싶어 했다는 함경북도의 명소, 칠보산이 한국과 미국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화폭을 그대로 옮긴 듯한 20m 대형 화면을 통해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칠보산도(七寶山圖) 병풍'을 디지털 영상으로 표현한 전시를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미술관이 소장한 '칠보산도 병풍'은 19세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회화 작품이다.
칠보산은 조선 전기의 문신 임형수(1514∼1547)가 1542년 3월에 유람을 다녀온 뒤 남긴 '유칠보산기'(遊七寶山記)가 널리 읽히면서 함경도 지역을 대표하는 명승으로 꼽혀왔다.
10폭 병풍 형태인 이 작품을 펼치면 가로 460㎝, 세로 185.2cm 크기에 달한다.
누가 그렸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개심사, 회상대, 금강굴, 천불봉 등 칠보산의 주요 명소와 웅장한 산세를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칠보산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은 현재 4점 남아있는데 클리블랜드 소장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병풍의 오른쪽 상단에는 화제(畵題·그림에 써넣은 시를 비롯한 각종 글귀)가 있는데, 이는 남구만(1629∼1711)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문집인 '약천집'(藥泉集)의 내용을 필사한 것이다.
글에는 '세속에 전해 오기를 옛날에 일곱 산이 나란히 솟아있었기 때문에 칠보산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부분이 있어 일곱 가지 보물을 품었다는 칠보산 명칭의 유래를 알게 한다.
전시에서는 북녘에 있어 지금은 닿지 못하는 곳, 칠보산 일대의 장관을 경험할 수 있다.
임형수가 칠보산으로 유람 떠났던 3월 15일에 맞춰 한국과 미국에서 공개되는 영상은 과거 조선 땅에 살았던 선비가 칠보산으로 떠나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배우 류준열이 재능 기부 형태로 전시해설(내레이션)에 참여했고 클래식과 국악, 대중음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이 음악을 맡아 10분간의 '여행'을 이끈다.
그림 속 등장인물이 실제 움직이는 듯 굽이치는 고갯길을 걷고, 폭포가 흘러내리는 굴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칠보산도 병풍에 남은 풍경 하나하나를 살린 몰입형 전시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폭 22m, 높이 4.7m의 대형 디지털 화면을 통해 낮과 밤, 날씨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칠보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클리블랜드 현지에서는 '칠보산도 병풍' 실물과 디지털 영상(폭 15m, 높이 3m 화면)이 나란히 관람객을 맞는다.
윌리엄 그리스워드 클리블랜드미술관장은 영상 축사에서 "칠보산을 묘사한 19세기 병풍을 한국과 전 세계 관람객에게 디지털 전시로 선보일 멋진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번 전시는 'K-공유유산'을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활용한 사례로 눈길을 끈다.
공유유산은 2개 이상의 국가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현지 기관과 처음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었다.
칠보산도 병풍을 비롯해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유산 13점을 살펴볼 수 있는 3차원(3D) 영상도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한국 전시는 5월 26일까지, 미국 전시는 9월 29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한국과 미국이 가치를 공유하는 'K-공유유산'을 국내외에서 동시에 활용한 첫 사례"라며 "현지에서도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한 가치에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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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저작권자(c) 연합뉴스,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2024/03/15 13:3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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